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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Talk about Being Independent 
내가 하고 싶은 인디 문화 이야기

나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있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통 그러한 것들을 사람들은 꿈이라고 부른다. 내게 ‘마이너리티-리포트’ 작성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꿈이고, 이제 조금씩 실현시켜 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독립적인 성향으로 스스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마이너리티), 그들을 기록(리포트)해 두는 것이 나의 목표다. 

1990년대 후반, 인디 문화의 시작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도 도시 곳곳에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흐름이 숨어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찾아 볼수록 매스미디어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미 사진이나 그림, 영상이나 음악과 같은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와 있었고, 나는 소비자로서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삶의 기준이 바뀌어져 갔다.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멋있는 사람들, 불평과 투쟁 보다는 자유와 낭만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에게 ‘인디(Independent)’문화는 맞춤옷처럼 꼭 맞는 그 무엇이었다. 

인디 문화에 빠져들수록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좋았다. 남들과 다른 문화를 즐기고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게 되었고, 그 문화의 일부가 되어 삶의 기쁨을 누렸다. 문화 소비자로만 살다가 처음으로 문화 생산 비슷한 것을 하게 된 것이다. 탐구생활로 방학을 보내고 일기와 스크랩북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 익숙한 형식을 빌어 나만의 기록 작업을 시작했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고, 그래서 쉽게 작업했다. 당시 부산 사직동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함께 타는 친구들의 사진들을 인화하고, 잡지에서 오려낸 글귀를 붙이고 나의 글을 써서 내가 에디팅한 잡지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이것을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다. 아마 보아오던 익숙한 것들과 다른 이미지와 형식이 친구들에게 먹혔던 것 같다.

이 반응에 신이 난 나는 이후 8mm 홈비디오 캠코더로 스케이트 보더들이 도시를 놀이터 삼아 노는 장면들을 찍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친구들인 ‘런캐롯’이라는 펑크 밴드의 노래를 녹음해 영상물을 만들었다. 멋대로 만든 뮤직비디오랄까? 디지털 영상 편집 프로그램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편집은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8mm 캠코더를 비디오(VHS) 기기에 연결하고, 비디오의 녹화 버튼을 누르고 동시에 캠코더의 재생 버튼을 눌러 원하는 장면을 복사한 뒤, 정지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부분을 재생하는 것을 반복해서 기본 편집을 했다. 그 다음  그것을 다시 캠코더로 복사한 뒤, CD플레이어에 녹음된 노래를 비디오 테이프에 덮어 쓰는 식이었다. 

지금처럼 디지털화 된 시대에 들으면 참 답답하고 지리한 작업이지만, 이때에는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적어도 내겐 그랬다) 만들어진 영상에 자막이나 제목을 넣을 수 없어 고민하다가 종이에 쓴 것을 촬영해 메인 영상 앞뒤에 편집해 넣는 것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완성됐고, 이 비디오 테입을 복사해 친구들과 나눠 보면서 낄낄거렸다. 1999년, 획기적인 프로젝트였던 ‘쌈지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뮤직비디오 컨테스트에도 내보았는데, 당연히 떨어졌지만 우리 비디오가 제일 웃긴 것 같아 기뻤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순전히 하고 싶어서 해낸 것의 즐거움은 이전에 느낀 것과는 전혀 새로운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디 문화가 팽창하면서 함께 나타난 변질과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인디 문화가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고 거대화 되는 것을 멀리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카이 매거진>을 비롯한 잘 나가던 핸드폰 회사의 문화 무가지들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담아 젊은 고객들을 끌어 들였고, 그 중에서도 충격적으로 데뷔한 크라잉 넛은 세기가 바뀌면서 모두를 위한 월드컵 응원가를 부르는 팀으로 바뀌었다. 

많은 인디 밴드들이 더 큰 무대에 서게 되면서 많은 팬을 얻었지만 상대적으로 오래된 팬들을 잃었다. 인디 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변화 할수록 인디 문화는 유행의 일부가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쉽게 스쳐 지나가는 유행가처럼 소비되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무가지를 통해 알려진 인디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싸구려의 것, 돈을 주지 않아도 노래하는 공짜 사람들의 이미지’로 확장 되기도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내가 알고 있는 ‘진짜’ 인디 아티스트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회가 멋대로 내린 평가는 많은 이들에게 가혹한 것이었다고, 인디라는 유행의 불꽃은 그렇게 약해져 가고 있다. 

초기의 인디 현상이 지나가면서, 최근엔 다양한 주제의 타이틀을 단 서브 컬쳐의 시대가 온 듯하다. 젊은 층의 패션에 스트리트 브랜드의 유행이 불고 있고, 국내에도 브라운브레스를 비롯한 여러 독립 브랜드의 작업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이들과 함께 잊혀진 줄, 혹은 없어진 줄 알았던 인디 문화 또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문화다) 그리고 천천히 인디 시절과 비슷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인디라는 이름이 붙은 ‘인디 음악’이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자신의 PR을 열심히 하면서, 인디는 메이저로 데뷔하기 위한 길처럼 보이고, 사람들의 시선도 차가워져 가고 있다. 유명한, 비교적 성공한 인디 밴드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속사와 매니저도 있는 큰 공연 스케줄을 잡아 공연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공연장을 제외한 작은 라이브 클럽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클럽, 스트릿 컬쳐에 관한 매거진들은 스트릿 브랜드 패션만을 다루며 소비를 부추기면서 문화를 왜곡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고 신성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소비를 위한 하나의 아이템이 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은 씁쓸하다. 대중에게 관심을 받을수록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야 하는데, 흐지부지하게 변하는 현상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인디 문화 안에서, 그것을 즐기며, 그것을 위해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여러 씬은 많은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요소로  빠른 속도로 상업화, 사업화 되고 있다는 비슷한 아쉬움들이 많았다. 다른 채널을 통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인디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돈을 주는 브랜드가 인디를 서포트 하는 것인지,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인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불만들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었다. 함께 해온 누군가에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변하는 것이 괜찮을까? 그렇다면 인디 속에 많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2011년 ‘마이너리티-리포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십 수 년 넘게 독립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조적인 생산자들이 소수지만 주위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결과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많았지만, 궁금한 것도 많았기 때문에 더 깊게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대부분의 매체들이 그들을 다루는 패턴은 늘 같았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 앞으로의 계획’같은 상투적인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지루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해당 문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호흡해 온 나로서는 컨텐츠의 차별화에 조금 더 자신이 있었다) 

처음은 논현동에 위치한 복합 문화공간인 플래툰에서 세 시간 정도의 담론으로 시작됐다.  VS(스트리트 아티스트), 이근백(브라운브레스 대표), 황규석(타운홀 레코드 대표), 서기석(밴드 The Geeks), JNJ Crew(그래피티 아티스트), 김진수(Dimito)를 패널로 두고 여러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푸는 데에 집중했고, 이후의 자료 조사에는 반달, 와키, 지알,  Kay2, 정크하우스, 마필 등의 그래피티 라이터, The Geeks, Things We Way, 자니로얄 등의 하드코어 밴드, Differ, Eye Na 등의 비보이, 힙합플레이야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준, 그리고 문동욱, 차정열, 박성완 등의 스케이터,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사진으로 담고 있는 45, Mad Bean, 그리고 그러한 문화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우도(플래툰), 플래툰의 대표 Tom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며, 몇 시간씩 되는 녹음 파일을 일일이 문서화 시키는 것도 힘들었지만, 막상 그렇게 쌓인 자료를 정리하면서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 졌다. 돌이켜보니 모두가 각자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그들에게 너무 큰 씬의 이야기를 부탁하고, 나는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를 억지 논리로 합쳐 글을 써 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하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어렸던 것도 있고, 처음 시작하는 작업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막막했던 것도 있다. 또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문화를 이루는 많은 씬은 아직도 ‘형들’의 왕국이었고, 동생 입장인 나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 조심하기 시작한 것이 결국 방향을 잃게 만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대의를 찾겠다며 헤매고 있을 때, 자니로얄의 보컬인 신형수 형은 몇 마디의 말로 모든 것을 명쾌하게 해주었다. 

문화에는 부류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는 어떠한 부류라고 구별 되는 것이 싫었다. 스케이트 보드도 타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굳이 여러 사람들과 무리 지어 타지 않았고, 음악도 겉으로 보여지는 패션보다 그 정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피어싱도, 닭머리도 하지 않고, 빨간 체크바지도 입지 않았다. ‘펑크 록커라면 적어도 이래야 해’라는 외면적인 요구와 내면적으로 중시하는 반정치, 반사회의 강요도 싫었다. 나에겐 그들처럼 사회에 대한 불만도 없었고 선동을 위한 큰 뜻도 없었다. 다만 나 자신과 친구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뚜렷한 기준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같은 이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디 문화의 핵심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들이 모인 흐름이다. 이것에 꼭 대의나 명분, 전체를 위한 목표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각기 흩어지고 있는 판에 그 모두를 종합해 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 형수 형은 내게 뚜렷한 관점으로 밀어 붙이기를 권했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결국 그 일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작업을 중지한 뒤, 우리 사회에서 한류가 더 많이 이야기 될수록 나의 끝내지 못한 작업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체화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 고민을 파운드 매거진의 서옥선 편집장님에게 털어놨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페이지를 주겠다. 대신 과감하게 써라”라는 답을 들었다. 우선 나는 인디 문화와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에 대해 짚고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먼저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한류, 과연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가?
대한민국의 문화가 이토록 영향력이 있었을 때가 있었을까? 모두가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알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역사이래 대한민국 최대의 문화 부흥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한류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백과사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80년대의 홍콩영화의 유행을 ‘항류(港流)’라고 불렀고, 90년대 일본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등의 유행을 스스로 ‘일류(日流)’라고 불렀으며, 90년대 후반에 한국의 TV 드라마와 대중음악의 유행을 ‘한류(韓流)’ 라고 불렀다. ‘~류(流)’ 라는 표현은 ‘~식’, ‘~스타일’ , ‘~파’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일본 용어다.(두산 대백과 사전 발췌) 한류는 90년대 중반 TV 드라마와 대중가요의 수출로 얻은 결과물이었다. 동남 아시아에도 한류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고, 대중문화에서 시작한 애정이 한국의 음식, 패션, 한글과 같은 요소에 대한 애정으로 자라나는 특이한 현상을 말하지만, 이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90년대 후반의 한국은 외환 위기로 산업의 거품이 빠졌고, 정부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당시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의 성공사례를 참고하여 정책 지원을 받으며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많은 부분에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고, 소비를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보니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K-Pop, 희망과 절망 
90년대 중반, 립싱크로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나타나 대중가요를 이끌었다.  K-Pop또한 그들, 혹은 그들의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립싱크가 노래인지 연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음악프로그램에 나온 사람은 우선 가수가 되었다. 남이 만들어 주고 안무를 짜준 ‘가짜’ 노래(립싱크)를 그럴 듯하게 부를수록 가수로 인정받았고, ‘진짜’ 유명해진다는 것이 나는 신기했다. 몰론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립싱크 가수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이 문제일 뿐. 싱어송 라이터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남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얼굴을 알리며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것이 슬프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드래곤이나 태양, CL, 박재범 등 같이 차별화된 노래와 이미지로 승부하는 아이돌은 꽤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가수로 알려지기 위해 열심히 얼굴을 드러내고, 음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돌 그룹이 더 많다.  노래 연기를 하는 가수로는 그 생명이 짧으니 미리 연기자가 되는 경우도 아주 많다. 음악성이 아닌 대중성에 포커스를 맞추니 사랑 노래가 전체 노래의 99.9%를 차지하는 것도 놀랍지는 않지만,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것은 확실하다. 끝을 모르고 벗고 나와 선정성의 끝까지 가는 안무도 마찬가지다.  
TV 드라마, 막장을 이야기하다 
TV 드라마 <대장금>과 같이 한국의 과거인 조선의 풍경을 배경으로, 국내외 전반에 걸쳐 한복과 한식에 대한 같은 열풍을 일으킨 한류에 걸맞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드라마는 약속이나 한 듯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개인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배경이 학교든, 경찰 조직이든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하는데, 이때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꼬이게 된다. 드라마 작가는 막장 가정사나 극대화된 빈부의 격차를 더해 긴장감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겨울연가>의 이민형도,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도, <가을동화>의 한태석도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동화 속의 왕자님 같은 사람이다. 부유하고 자상하며 비현실적으로 잘생기기까지 했다. 넓은 세상을 속에는 그런 남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화 되면서 허황된 꿈을 꾸게 하니 문제다. 언제나 여자 주인공은 가난하면서도 질투와 욕심이 많은 보통의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고, 결국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드라마는 허구일 뿐이니 재미로만 보는 것이 될 수 있을까? 대중문화는 모두에게 공급되는 채널이기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요소가 유행이 된다. 드라마는 상류층의 삶을 연출하기 위해 다양한 소품과 장치들이 필요하고, 그것을 여러 회사에서 협찬해주니 서로 좋은 것일까? 시청자들은 반복되는 드라마의 시청각 학습을 통해 공식을 얻게 된다. 상류층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들을 따라하면서 허황된 자존감을 찾아간다. TV 드라마가 유행한지 20년도 되지 않아 사람들은 사랑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명품가방을 구입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며 계급을 나누어 서로를 평가하면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잘 팔리는 것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공식을 주입하는 것이 문제다. 

영화는 한류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감독의 영향력이 막강한 영화는 대중문화라기 보다 감독의 완성품이기 때문에, K-Pop, TV 드라마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제에서 또한 흥행 자체 보다는 작품성에 집중하고 있고, 좋은 감독들은 흥행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 전체적인 완성도, 일관성을 위해 싸우면서 좋은 작업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국내에서 흥행한 영화들, 그리고 외국에서 큰 상을 받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한류에 힘을 보태었다. <올드보이>, <쉬리>, <설국열차> 와 같은 영화의 세계 진출은 안에서 부터 밖으로 퍼져나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피에타>, <워낭소리>, <오래된 인력거>와 같은 비주류 영화 또한 계속해서 제작되고 대중의 관심을 받고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 영화는 메이저와 인디가 함께 주목 받고 있기에 멋지고, 앞으로도 한류에 많은 힘을 보탤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를 낳은 한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의 요소인 대중문화를 역사적으로 보면 계층간의 벽을 허물고, 혹은 대중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서, 대중의 기호를 반영해 만들어져 왔다. 대중문화는 개인 사이에 대화와 소통을 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의 문화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일정 이상 규모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란 꼭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도 이상으로 지배적이게 되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대중문화의 세력이 커질수록 대중 매체는 더 좋은 광고 수단이 되는데, 충동적으로 이목을 끄는 것에 집중하면서 더욱 선정적인 것, 비윤리, 비도덕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 결과물들이 사회 전반으로 너무 쉽게 흡수되면서 맹목적 성공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 풍조를 만들어가는 것은 큰 문제다. 대중매체는 양날의 검이다.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 시대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획일화 시키고, 계층을 분리하며, 대화와 토론을 단절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한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서 우리 사회를, 그리고 한류 수입국의 문화를 병들게 하고 있다. 슬프게도 이러한 위험 요소를 견제하거나 제거하는 흐름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극적인 문화가 되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주류 대중문화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상상만으로도 암울하고 심심하다.(북한이 그렇다) 사고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대중문화가 아닌 하위 문화(Sub Culture)다. 비빔밥으로 벤다이어그램을 그려 예를 들어보자. 밥은 대중문화, 나물과 고명, 계란 같은 것들은 하위 문화다. 인디 문화는 비빔밥의 풍미를 완성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고추장과 참기름 같은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쌀로 밥을 지었어도 제대로 된 비빔밥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비빔밥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음식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그 맛을 상상할 수 없고, 재료를 섞고 맛보는 체험을 통해 그 맛을 알게 된다. 각각의 재료의 본연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가 어우러져서 나오는 놀라운 맛-나는 한류가 그러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체험해 보고 싶은 것,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할만한 것이 되어 모두가 나눌 수 있는 하나의 가치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대중문화와 인디 문화는 스스로 그 자체의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다. 문화라는 비빔밥은 먹는 사람이 직접 비벼 먹을 때 더 맛있다. 문화 생산자라는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인디 문화를 고객의 상에 올리기도 전에 먼저 비벼서 내놓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디 문화는 디자인, 인문학과 같은 단어처럼 오용되거나 남용되면서 본래와 의미와 가치는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뚜렷한 정신, 변치 않는 가치가 있고, 나는, 또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고 추구하며 살고 있다. 칼럼을 이어가면서 어려운 주제를 만나면 개인적으로 풀어낼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스케이트보드 문화, 펑크록 문화, 그래피티 문화, 비보이 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모든 의견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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